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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 전체회의

제1회 양국 전체회의 회의록

작성자
kjcec
작성일
2020-10-07 14:15
조회
1190
제1회 양국 전체회의 회의록

ㅇ일 시 : 1999년 9월 22일 오전 9:30 – 오후 7시
ㅇ장 소 : 신라호텔 23층 오키드 룸(Orchid Room)
ㅇ참석자 : 한국측 위원 9명(고 은, 장명수 위원 불참), 사무국장 1명
              일본측 위원 10명(하가 토오루 위원 불참), 사무국장 1명

< 합의 사항 >

1. 한일(일한)문화교류회의 영어명칭
‘ THE KOREA-JAPAN(JAPAN-KOREA) CULTURAL EXCHANGE COUNCIL’

2. 양국 위원들은 평양의 고구려 고분군을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하 는 데 적극 지지한다. 아울러 히라야마 이쿠오 위원의 이상과 같은 문화유산 등록에 관한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

< 논의 사항 >

1. 단기 과제

1) 여성화가들의 작품전시 및 페미니즘 세미나의 교류 개최
– 일정한 시대를 기준으로 한 여성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함은
물론 페미니즘을 주제로 하여 세미나를 개최한다.
– 국립현대미술관

2) 연극 작품을 공동 제작하여 교류 공연
– 양국의 전문가들이 합작하여 연극작품을 제작하고, 교류
공연한다. 작품의 주제 및 준비는 상호 협의하여 정한다.
– 한국연극협회

3) 번역도서 출판 교류전시회 개최
– 한국에서 번역된 일본서적, 일본에서 번역된 한국서적을 교류 전시한다. 재일교포들이 쓴 책도 소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 다.
– 국립도서관

4) 한일 궁중음악 연주회의 교류 개최
– 한국에서는 궁중음악을, 일본에서는 아악을 교류 연주한다.
– 국립국악원

2. 중기 과제

1) KBS와 NHK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조선통신사에 관한 이벤트에
적극적으로 협력한다. 다양하고 깊이 있는 프로그램이 되도록 노 력한다. (월드컵을 전후하여 개최할 예정)
– KBS

2) 양국의 국립박물관이 추진하고 있는 국보급을 포함한 문화재
교류전시를 적극 협력한다.(월드컵을 전후하여 개최할 예정)
– 국립박물관

3) 일본 아사히신문(朝日新聞)사에서 추진하고 있는 일본 근대미술 컬렉션 전시행사에 협력한다.
–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일본 근대미술가의 작품을 양국이 교류 전시하고자 한다.
– 국립현대미술관

4) 월드컵 경기를 위해 양국은 각각 응원가를 만들고, 상대방이 경기 할 때는 응원가를 상호 불러준다.
– 양국 젊은이들이 이미 공유하고 있는 곡을 선정하여 응원가로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 담당 미정

5) 월드컵을 기념하는 문학행사로서 한국에서는 시조를, 일본에서는 하이쿠(俳句)를 지어 발표하는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 담당 미정

3. 장기 과제

1) 한․일․중국의 학자들이 공동집필하여 기간된 『유럽 문화사』 에 필적할 만한 『동아시아 문화사』를 출판한다.
– 담당 미정

2) 한일 학자들이 공동집필하여 양국의 국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 는 『한일문화사』를 출판한다.
– 담당 미정

3) 2004년 한국 국립중앙박물관 개관시에 일본문화재를 전시하는 데 협력한다.
– 담당 미정

4) 한․일․중국 문화의 공통점에 대한 시민참여 논의 개최
– ‘아시안 아이덴티티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3국의 시민들이
참여하는 심포지움을 연다.
– 담당 미정

<정부에 건의하는 사항>

1. 월드컵 문화교류를 위한 정부 실무자 협의회를 활성화시킬 것을 양국정부에 건의한다.

2. 한반도 휴전선 내의 자연․문화유산을 조사하고, 이에 대한 보존․수리를 남북한 정부당국에 건의한다.

3. 보다 깊이 있는 한일문화교류를 위해 양국 대학원생(동일 전공자)들의 자유로운 만남의 광장을 확대해 줄 것을 양국 정부에 건의한다.

4. 일본에 있는 한국문화원의 위상․시설․활동 등을 보강하여 서울에 있는 일본문화원과 대등한 역할을 하도록 한국 정부에 건의한다.

<논의 사항의 추진 방법>

1. 양국의 사무국장은 이상에서 논의된 사항들을 추진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한다.

2. 양국 운영위원회는 사무국에서 만든 계획서를 확인하고 행사여부를 결정한다.

3. 모든 진행상황과 결정내용은 문서로 위원들에게 보고한다.

붙임서류 1. 지명관 위원장 제안서
2. 히라야마 이쿠오(平山郁夫) 일본측 부좌장 발표문

월드컵과 한일 문화협력

한일문화교류회의 위원장
지 명 관

1. 월드컵이 의미하는 것

한국에는 1965년 체제에서 2002년 체제로라는 말이 있다. 1965년 체제란 1965년에 체결된 한일협정에 의한 한일관계이고 2002년 체제란 2002년의 월드컵으로 상징되는 한일관계를 말한다. 65년에 전후 처음으로 한일 양국 사이에 국교가 열렸지만 그것은 주로 정치․경제에 있어서 양국 관계가 정상화된 것이었고 그것은 양국에서 상당히 거센 저항을 받았다. 거기에는 해방전의 지배와 피지배 그리고 냉전적인 사고가 깊이 스며들어 있었다. 2002년 체제란 그런 것을 초극하고 평화와 협력을 목표로 하며 문화의 세기를 구하고 국민적 교류의 시대를 바라는 것이라고 하겠다.
98년 10월에 한일 양국의 정상에 의하여 발표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그리고 그에 따른 「행동계획」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요청을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공동선언의 선상에 서서 우리는 월드컵 한일 공동 개최의 성공을 기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2. 지금까지 걸어온 길

한국정부측 보고에 의하면 월드컵 개최도시의 경기장 건설공사는 99년 9월 현재 평균 24.4% 진행되고 있으며 2001년 9월에서 12월까지는 완성된다고 한다. 경기장 건설과 함께 문화행사와 관광을 위한 준비도 서둘러야겠지만, 그 진행은 상당히 늦어지고 있다고 보여진다.
한편 한일 양 국민의 교류는 확대일로에 있다고 하겠다. 작년 10월 한국정부는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개방을 발표했다. 이것은 실질적인 효과 이상으로 양국 국민의 마음을 여는 일종의 해빙을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지방자치단체 등이 여러 가지 형태의 한일문화교류 행사를 하고 있다. 일본인 한국인 입국자는 계속 늘고 있어서 97년에 비하면 98년에는 17%나 증가해서 1,947,784명에 달했다. 금년 상반기의 통계에 의하면 거기에서 또 17%가 증가하고 있다. 금년에는 230만명 이상이 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국인 일본 입국자는 IMF 관리체제하에서 급격히 감소됐었지만 금년에는 그 추세가 회복되고 있다. 여기에서, 한국에서는 대중문화의 개방과 발을 맞추어 한일 양국의 젊은이들을 위한 만남의 광장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 시작하고 있다.

3. 월드컵 문화행사를 중심으로

금년 여름 오오이타(大分)시를 방문했을 때 경기장 건설, 문화적 배려, 관광에 대한 정비 등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우사(宇佐)의 하치망구우(八幡宮) 등을 찾고는 키타규슈(北九州)에 있어서의 고대사(관광)로와 같은 것을 생각했다. 한국에서 일주일쯤 전에 충남으로 백제의 고도 공주, 부여 등을 방문하고는 2002년을 향해서 거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데 실망했다. 일본으로부터의 수학여행을 맞아드린다고 하면서도 일본인을 위한 안내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이러한 상태에서 월드컵 한일 공동개최를 성공시키기 위해서 양국의 문화협력을 어떻게 진행시킬 것인가. 한일이 우열을 다투는 것이 아니라 협력의 결과를 보이고 서로의 특색을 보여야 할 것이다. 한국은 그다지 개발되지 않고 세련되지 않은 것을 그대로 보여주어서 좋을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서로 조언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문화협력은 일조일석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2002년까지 차근차근 쌓아올리는 것이 필요하다. 국가적 레벨만이 아니라 개최도시 사이에서도 그러한 협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국가적인 지원이 필요한 것이다. 국가적인 한일문화교류는 월드컵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한일협력을 일상화하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거기에는 매스컴의 협력이 불가결하다. 한일문화교류가 지향하는 것은 결국 민간자신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또한 자율적으로 한일 문화교류가 활성화되는 것이라고 하겠다.
월드컵에서의 한일 문화교류에 있어서는 각 개최도시의 문화행사 속에 교류의 구체적인 모습이 나타나야만 할 것이다. 게다가 그 행사는 그 도시만의 것이 아니라 적어도 그 지역 전체가 참가하는 것이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 축제는 다른 아시아 나라들의 참가를 얻어 동아시아 문화교류의 시대를 향하는 계기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4. 구체적인 실천을 위하여

한국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이것을 위해서 협의체를 만들어 협력해 가야만 할 것이다. 한일 양국 개최도시 사이에서 문화협력이 토의되어야 한다. 현대는 흔히 「요구가 많고 자제가 없는 사회」라고 하듯이 한국에 있어서도 신뢰받을 수 있는 민간인 기구가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고 이것을 양국정부의 실무자협의에서 토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한일 문화교류회의는 너무나 많은 문제에 직면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할 수 있는 것을 하나하나 쌓아갈 수밖에 없다. 동아시아 문화를 시계(視界)에 넣으면서 적어도 한일사이에서의 국민적 교류, 문화교류에 의해서 설혹 정치나 경제에서 마찰이 일어난다고 해도 한일관계가 후퇴하는 일이 없기를 기대한다.

한일문화교류회의 제1차 전체회의 일본측 주제발표

일한문화교류회의
히라야마 이쿠오
….
일본에 있어서 국가로서의 문화의 역사의 시작은 백제의 불교가 도래된 532년이라고 봅니다. 그 이전의 일본 열도에서는 죠몽(繩文)시대, 야요이(彌生)시대 등이 이어져 왔는데, 각각의 세력이 여러 지역에 분포되어 있었으며 또한 그것이 통일된 것은 많은 시간이 지난 후 야마토(大和) 정권이 성립된 때였습니다. 일본은 국가로서의 의식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 선진 국제 문화를 도입해야 했고 그 당시에는 백제나 다른 나라들로부터 여러 가지 문물을 전래받았습니다. 또한 왕인 박사로부터 소개된 문물도 많이 있습니다. 필경 일본이란 국가를 형성할 당시에 한국측의 많은 협력을 바탕으로 했다고 생각합니다. 한반도나 중국으로부터 많은 문물이 들어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여러 가지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고 또 여러 가지 물품들이 출토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대단히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일 관계입니다. 대단히 유해한 관계가 있었던 것은 17세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한반도 침략이라는 불행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이것은 한반도에 많은 아픔을 남겼습니다. 여행으로도 둘러본 바 있고, 우리 선조가 좋지 않은 일을 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굉장히 마음 아프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선조들 가운데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문화적인 면에서 절대적으로 타협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계속 지키다 자결한 선조가 있었습니다. 본인의 선조 가운데에도 전국시대 말에 ‘시마따’라는 무장이 있었습니다. 이 점에 대해 외부에서 언급하는 일은 처음 있는 일인데, 리큐의 다실 등에서 여러 가지 물품을 본 적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런 일이 있었다는 데 대해 대단히 신기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문화적인 면에 있어서 본인도 히로시마 원폭투하 당시에 그곳에 있었으므로 그와 같은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연유로 ‘평화’를 주제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상호 문화를 공부하며 어떻게 해서 일본문화가 현재까지 이르렀는가 하는 점, 동아시아의 역사, 동아시아와 서구와의 역사적 관계, 헬레니즘 등 여러 문제에 대해 공부해 왔고, 100회 이상에 걸쳐 동서문화의 교류를 공부하며 둘러본 바 있습니다. 이를 통해 커다란 역사적 흐름, 소용돌이 같은 것이 동에서 서로 전달되어 갔다는 생각을 받았습니다. 일본은 작은 섬나라이나 커다란 유러시아 대륙의 동서문화 교류로부터, 그리고 한반도․중앙아시아 문화로부터 많은 영향과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안에서만의 시각으로는 일본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와 같은 문화가 형성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반도․중국․중앙아시아 등 여러 부분의 문화를 모두 일본문화 속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상호 교류해온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하며, 그런 부분에서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19세기 일본의 35년간에 걸친 한반도 식민지배에 대해서는 상당히 가슴아프게 생각합니다.
이번 회의에 본인의 처와 동반을 했습니다. 1940년 박광수 목사님께서 일본 정부에 대해 창씨개명, 신사참배 등에 관하여 항의를 하셨는데, 한국의 기독교인으로서 일본정부에 격렬한 항의를 하셨습니다. 그 당시 본인의 처의 아버지는 국회의원으로서 외무성의 참여관이셨고 기독교 신자이셨습니다. 그분은 일본의 창씨개명, 신사참배 등의 강요에 대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하여 당시 상당히 격렬하게 항의한 듯합니다. 그때 그분은 국회에서 저항하시다 투옥되셨습니다. 이와 같이 그는 상당히 고생을 많이 하시다 패전 후 돌아가셨습니다. 4년 전 L.A.에 거주하는 그분의 자녀들이 마쯔야마 쯔네지로의 유족들이 일본에 있는지에 대해 조사하러 왔습니다. 그때 제 아내를 만나 아내의 아버지가 상당히 고생을 많이 하셨으며 여러 가지로 보살펴 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경위로 제 아내와 이번에 함께 오게 되었으며 어제의 만찬에도 참석했습니다.
이와 같은 한일문화회의 석상에서 제가 위원이 된 것을 대단한 영광으로 생각하며 문화부분에서 어떤 사정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 문화를 서로 알지 못하는 것은 상당히 커다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해서 여러 지식인들이 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바, 그것은 한일 관계, 동아시아 평화부분에 있어서 상당히 훌륭한 선택이셨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은 히로시마(廣島)에서 피폭당시 중3으로 강제노동중이었는데, 그당시 동료 15명이 즉사했습니다. 본인은 목숨을 구하기는 했으나 피폭되었기 때문에 방사능에 노출되어 백혈구 수치가 적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평화를 기원하는 사람으로서 생활하다보니 전보다 더 건강해지게 되었습니다. 2년 전에 원폭돔이 세계의 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때도 미국에 가서 여러 가지 협상을 했습니다. 지금도 미국과는 여러 의미에서 문화교류를 거듭하고 있으며 상당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피폭자이면서 이와 같이 우호적인 관계를 갖는 이유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받곤 합니다.
유고슬라비아의 사라예보에 전투중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가 있다고 하여 위문을 간 적이 있습니다. 그 화가를 만나 폭탄이 오가는 중에서도, 즉 한과 고통 속에서도 예술이 나오냐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의 그림은 역시 그 색채가 탁했고, 고통과 한 때문에 아름다움은 느낄 수 없었습니다. 단지 아주 거친 그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회파적인 그림을 그린다거나 아니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을 고민했는데, 이것을 승화해서 평화를 기원하고, 그 안에서 불식하지 않는 정열로서 그것을 표현해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난 뒤 상당히 기분이 좋았고, 그 이후 건강도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그 화가에게도 노력을 당부했더니 그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주었습니다.
양국간에서도 이와 같은 에너지를 바탕으로 하여 나아가주길 바랍니다. 양국 역사․문화에 있어 양국민이 이 부분을 긴밀히 이해하고 확실히 주지해야 합니다.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품을 일본에 전시하고 일본에서는 배울 점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전시회를 통해 문물 전래 후 일본은 점차적으로 독자성을 발휘해갔다는 점을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김화백과의 2인전을 열고자 합니다. 그리고 에도모노가타리(江戶物語り)라는 것이 있는데, 이와 같은 작품의 창작활동을 하면서 조선통신사에 관한 내용을 집필하고 있습니다. 조선통신사는 열두 차례에 걸친 양국간의 교류로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이 조선통신사가 있었다는 것을 일본 국민이 알 수 있도록 재현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양국이 공동 프로젝트를 구성하여 실현해 나가고자 합니다. 그리고 조금 전에 지명관 위원장께서 말씀하신 20002년 월드컵에 있어서도 요코하마에서 개최도시로서의 실현을 위해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번 한일합동운영위원회에서 지명관 위원장께 월드컵 경기시 전원이 일본을 응원하는 것이 아니라 민박을 했던 사람들은 한국을 응원하는 점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지 위원장께서는 흔쾌히 받아들이시며 그 점을 고려해보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일간의 다양한 문화교류를 통해 이벤트가 이루어지고 이벤트를 위한 여러 제안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해야 할 일은 많습니다. 종합적으로 생각을 하고 좋은 생각으로 임했으면 합니다. 특히 한국의 일본문화개방이라는 점에 대해 일본측에서도 대환영입니다. 그점에 대해서도 하나씩 하나씩 실현해 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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